▲ 15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서 광주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 모임인 '또바기' 소속 학생 70여명이 발대식을 갖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반대 여론 거세나 불안한 이유는 국정화 추진 방식의 폭력성 때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다. 정치권, 역사전공자들의 반대를 넘어 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의 반대로 확대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표현대로 말하면 역사학자의 90%가 반대하는 형상이다.

반대의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유신시대의 국정교과서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우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우려, 현행 검정체제에서도 충분히 국가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는 비판, 역사를 하나의 시각과 관점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비판, 다양화 시대에 하나의 역사교육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 국가관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 국정교과서는 학생을 역사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인격체가 아닌 조작할 수 있는 수동적인 물건으로 본다는 주장 등 반대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시대의 흐름과 시민의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기 때문에 반대의 이유 역시 다양하다.

논리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저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이유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적으로 반대이유만으로는 절대로 국정화를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쟁점이 논리 대결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이러한 논리와 감정의 충돌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힘으로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힘으로 밀어붙이는데 다른 정책은 오죽 하겠는가, 과연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열린 광장 봉쇄한 독재시절 ‘긴급조치’와 닮았다

힘에 의한 문제해결 방식은 불안감을 낳는다. 시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안감, 우리 사회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불안감, 앞으로 더 폭력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는가 하는 불안감, 나아가 하나의 목소리만 지배하는 독재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방식의 폭력성은 열린 광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포기했다는 점에 있다. 역사교과서 집필방식이 독점의 국정체제에서 그나마 경쟁이 있는 검정제로 바뀐 것은 진전이다. 최종적인 형태는 자유발행 체제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학에서 교재가 자유롭게 발행되고 선택되는 현실은 교과서의 자유발행 체제가 학문과 연구에 더 유용하고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문과 연구 분야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새로운 국정교과서가 좋은 교과서라는 점을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열린 광장에서 기존의 교과서와 경쟁을 하여 독자로부터 선택을 받으면 된다. 밀실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몇 명이 모여서 새로운 국정 교과서가 기존 검정제 교과서보다 낫다고 보고하고 회의한 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열린 광장의 공정한 경쟁을 아예 배척하는 방법은 원시적이고 위험하다. 봉건시대 왕과 귀족들의 결정방식이라는 점에서 원시적이고 잘못된 결정을 하고 이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문제해결 방식의 원시성과 위험성 때문이다.

긴급조치와 유사성① 국가의 독점

열린 광장의 공정한 경쟁을 아예 없애버리는 방식은 하지만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해결 방식은 아니다. 모든 독재국가에서 채택하는 방식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군부독재 구체적으로는 유신시대에 이미 경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이라는 일인 독재체제를 긴급조치로 유지했다. 당시의 문제해결 방식은 열린 공간의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아예 경쟁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 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아예 배제해 버렸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역시 열린 공간의 경쟁 자체를 없앴다는 점에서 유신의 긴급조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긴급조치의 첫 번째 공통점은 독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국가가 독점한다. 긴급조치는 헌법과 관련한 견해의 발표를 봉쇄하고 헌법 해석권을 국가가 독점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의 논의를 국가가 독점했다. 단 하나의 관점과 이야기가 통용되었다. 독점의 과정 역시 비슷하다. 열린 광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여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 한번으로 독점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긴급조치와 유사성② 토론 대신 처벌

두 번째 공통점은 토론 대신 처벌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토론을 통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방송프로그램인 PD수첩이 FTA 문제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때 청와대가 PD수첩에 연락을 취했다고 하는데 내용은 대통령과 PD가 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토론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에피소드는 왠지 민주적인 풍경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PD수첩이 광우병 보도를 하자 이명박 정부는 PD를 수사하고 기소해 버렸다. 당연히 청와대에서 토론을 하자는 제안도 없었다. 민주정부와 독재정부의 문제해결방식 차이다.

긴급조치는 정치와 헌법 문제,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토론을 봉쇄하고 모든 비판에 대해 처벌로 일관했다. 그 결과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많은 사람이 감옥을 갔다. 단순히 유신헌법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감옥을 갔다. 그 분들은 모두 잘못된 법률로 처벌받은 분들로서 당연히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아야 하는 분들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비판을 배제한다. 그리고 집필, 검수, 평가의 모든 과정을 국가가 독점한다. 반대파와 토론은 없다. 나아가 반대자는 처벌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법무부장관은 국정화 반대파에게 신속하고 단호하게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했다. 마치 헌법에 반대하면 처벌하겠다는 긴급조치의 내용과 흡사하다.

긴급조치와 유사성③ 논리 부족

세 번째 공통점은 논리의 부족이다. 긴급조치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 증대라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상황인식만으로 발령되었다. 이것만으로는 긴급조치를 발령할 만한 국가적 위기상황이 될 수 없다. 논리적으로 연결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이 아니라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선언한 헌법재판소의 표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마찬가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통해서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잡힌 역사의식을 길러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누가 보아도 이것만으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당화할 수 없다.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잡힌 역사의식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은 폭력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법 이외에 정상적인 방법이 훨씬 많이 있기 때문이다.

빈약한 논리는 무식, 무지를 의미한다. 무식을 벗어나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소신이라고 우긴다. 전형적인 긴급조치 스타일이다.

야권분열을 넘어 민주세력 단결해야

반대의 논리적 이유가 다양하고 감정적인 불안감도 널리 퍼져 있다. 문제해결 방식의 폭력성은 정치권,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 등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 등이 함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함께 나서야 할 근거는 이로써 충분하다. 그리고 민주세력이 모두 모여야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이후에 올 긴급조치와 같은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그동안 민주세력은 분열로 지리멸렬했다. 야권과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해 왔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단결하기 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안주해 왔기 때문이다. 공동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통해 단결의 정서를 높이고 공통의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특히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야당 정치권의 통합은 시급하다. 현재 야권은 분열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할만한 동력이 없을 정도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천정배 의원 등 야권 사이의 분열도 심각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분열도 심각하다. 대분열의 시기라고 할 만하다.

야권의 분열은 세대교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야권 분열을 용납하지 않는다. 중대한 위기 앞에서 사소한 이익은 내려놓고 연대와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 야권 분열은 넘어서야 민주세력의 단결을 호소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동시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