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대기업 갑질’의 전형을 보여준 남양유업이 공정위로부터 부과 받은 124억원의 과징금 중 96%에 가까운 119억원에 대해 취소 판결을 내려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대법원 1부는 남양유업이 과징금 부과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과징금 124억원 가운데 119억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지난 4일 확정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의 심각한 ‘물량 밀어내기’ 사실이 확인되자 12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유통기한이 다가오거나 주문하지 않은 제품을 강제로 할당해 구입하도록 하고, 판촉사원의 임금을 대리점이 절반 이상 부담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대리점 주에게 폭언과 욕설이 상시적으로 행해졌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기업 갑질의 전형’이라며 사회적 비판이 일자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남양유업은 이 같은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위를 상대로 구입을 강제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까지 매출액을 산정해 과징금을 과다하게 매겼다며 행정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난 1월 서울고법 행정2부는 남양유업이 유통기한이 다 됐거나 잘 팔리지 않는 일부 제품만 대리점이 구입하도록 강제했을 뿐, 전체 품목을 구입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과징금 124억원 가운데 119억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서울고법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남양유업이 부과 받은 과징금은 5억원이다.

“대법원 판결 믿을 수 없다!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이에 대해 “솜방망이도 이런 솜방망이 판결이 없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은 “남양유업 변론 담당한 로펌이 어딘지 궁금하다! 전관예우가 보인다!”, “대법원 판결 믿을 수 없다”, “불매운동 오래했지만 앞으로도 안 사먹겠다!”,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라며 분노하고 있다.

▲ 지난 2013년 남양유업 갑질횡포가 알려지면서, 남양유업 대리점주들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들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사태해결 촉구를 위한 규탄대회를 가졌다. <사진제공 = 뉴시스>

2013년 남양유업 사태가 불거지면서, 우리사회의 갑, 을 관계의 심각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에 공감하면서 시급한 대책 강구의 필요성을 외쳤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을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면서 우원식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 ‘을지로 위원회’를 신설해 활동하고 있다.

을지로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종학 의원은 5일 ‘go발뉴스’와 통화에서 “과징금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가 남양유업이 당시 피해를 본 대리점주들과 타협을 했기 때문에 이것이 판결에 반영 됐을 것”이라며 “(판결이) 애석하긴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판부가 이 문제를) 우리사회의 갑을관계 문제로 좀 더 봤으면 이런 판결을 안했을 텐데…”라면서 “사실상 현장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제대로 판단을 하기 어렵다. 대법관들이 현실세계와 괴리된 판결을 내리는 큰 문제가 현장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현장에서 겪은 고통은 과징금 이상”

‘을지로 위원회’ 소속 장하나 의원도 ‘go발뉴스’와 통화에서 “고등법원, 대법원의 판결은 상당히 유감”이라며 “많은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현장에서 겪은 것은 과징금 이상의 고통이었다. 도산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과정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리점주들이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장기간 농성도 했었다. 대리점주 자영업자들의 최초 단체행동이었다”면서 “이처럼 지금 대한민국사회의 심각한 갑을 관계를 대법원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go발뉴스’와 통화에서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남양유업 사건은 우리사회에서 존재하는 갑을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사건”이라며 “이런 상징적 사건에서 조차 법원이 대기업 편을 들어 과징금 결정을 취소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결국은 법원이 사회경제의 약자 편인지 대기업의 편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고 거듭 유감을 표명했다.

아울러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공정위가 과징금을 매기면 대기업들은 불복해서 법원에 소송을 낸다”면서 “그러면 과징금이 깎이는데, 사실상 과징금의 실효성이 있는 것이냐는 논란이 일게 된다. 이번 경우도 사실 마찬가지 문제가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