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사로서 1차 수사 때 고문 경관들의 엇갈린 진술에도 대질신문 등 확인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내용은 당시 일반에 공개된 수사 기록에서 확인된 것이라 기초적인 수사조차 벌이지 않았다는 거센 비판과 자질 논란이 더욱 불거질 전망이다.

13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검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2차 수사기록을 분석한 결과, 1987년 1월20~23일 진행된 1차 수사 당시 박 후보자는 박종철씨와 하숙집 친구 ㄱ씨를 조사한 경찰관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적극 수사하지 않았다.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ㄱ씨는 박씨가 9호 조사실에서 고문을 받고 있을 때 참고인 신분으로 박씨의 친구관계 등에 관해 14호실에서 조사받고 있었다.

1차 수사 때 반금곤 경장, 황정웅 경위 등 고문경찰관 2명은 ‘박씨가 9호실에서 고문받을 때 14호실에서 ㄱ씨를 조사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해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정호 경장도 조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1987년 1월22일 ㄱ씨는 “조사실에는 5명의 형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저를 신문하였고 그 내용은 저의 행적과 박종철의 방에 최근에 출입한 사람 등을 진술하라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다음날 황정웅 경위는 “저는 그 당시 14호실에서 반금곤과 함께 ㄱ씨를 신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9호실에서 생긴 일은 전혀 몰랐고, 가세한 사실도 없다”고 진술했다. 반금곤 경장도 “저는 ㄱ씨를 동행하여 황정웅과 함께 14호실에서 신문을 하였고, 박종철은 9호 조사실에서 조한경(경위)과 강진규(경사)가 신문했다”고 말했다.

▲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이날 이정호 경장은 자술서에서 “황정웅이 (박종철) 신문실에 조한경이 혼자 있으니 올라가라고 했다”며 “(조한경이) 너는 필요 없으니 내려가라고 해서 신문실을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들의 진술은 모두 박 후보자가 받았다.

ㄱ씨가 진술한 “조사실에 5명의 형사가 있었다”는 ‘ㄱ씨를 조사했다’는 황정웅·반금곤 두 사람의 진술과 다르다. <경향>은 ㄱ씨의 진술로는 5명의 경찰관이 함께 움직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반금곤이 진술한 “박종철은 9호 조사실에서 조한경과 강진규가 신문했다”는 “(박종철) 신문실에 조한경이 혼자 있으니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갔으나 (조한경이) 너는 필요 없으니 내려가라고 해서 신문실을 내려왔다”는 이정호의 진술 내용과 다르다.

<경향>은 진술이 다를 경우 거듭 확인을 거치고 대질조사를 벌이는 게 수사의 기본이라면서, ㄱ씨가 14호실에서 봤던 경찰관 5명의 신원을 모두 확인한 뒤 해당 경찰관이 박씨에 대한 고문이 이뤄진 9호실에 머문 시간대와 출입 시각 등을 파악해 추궁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대질 신문 등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석 달 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폭로가 나오고 2차 수사가 시작되자 박 후보자는 ㄱ씨를 의정부교도소로 데려가 당시 14호실에 있던 경찰관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한 현직 변호사는 <경향>에 “범인들이 짜고 주장한 알리바이를 전면 반박할 명확한 증거가 있고 범인들 사이의 알리바이 주장도 서로 들어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확인이나 추궁을 하지 않았다”며 “조사자를 목격한 ㄱ씨에게 1월에 경찰관 얼굴 사진만 보여줬더라도 얼마든지 나머지 고문경찰관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자 측은 “기록의 일부 맥락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기 위한 수사를 한 일이 없다”며 “상세한 사항은 청문회를 통해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해명했다.

한편, 야당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개입 관련 의혹의 해소가 먼저 이뤄져야 된다고 주장하며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개최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12일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박 후보자가) 청문회를 열면 다 밝히겠다고 하는데 지금 밝혀라. 대한민국 대법관 자리다”라며 “모든 것을 숨기고 은폐한 사람에게 어느 누가 대법관이라고 판결받기를 원하겠나”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