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하는 딸은 엄마와 놀이를 하듯 편지를 주고받았다. 첫 줄은 언제나  ‘사랑하는 엄마에게’  마지막 말은 “사랑해 엄마”였다.  딸은 엄마에게 보낸 편지에 동글동글한 하트를 가득 그려넣었다. “난 세상에 우리 엄마 밖에 없어”라고 말하듯 편지의 수신자는 늘 엄마였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안산 단원고 2학년 고 정지아양의 편지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책의 제목은 <사월의 편지>. 딸의 편지를 세상에 부친 사람은 엄마 지영희씨다. 엄마는 지아를 먼저 보낸 뒤 책상 서랍 속에 모아둔 딸의 편지를 책으로 엮었다. 책의 표지는 지아의 친구 전혜린양이 그렸다.

▲ 단원고 2학년 정지아양.©416가족협의회

“올바른 길로 가는 데 엄마가 다리가 되어 도와줄게. 비가 오면 우산이 되고, 눈이 오면 따뜻한 옷이 되고, 태풍과 비바람이 몰아치면 방어막이 되어 줄게.” 엄마는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풋풋했던 첫사랑의 추억을 딸에게 들려줬다. 가끔은 딸이 쓴 소설에 답문도 보내줬다. 엄마에게 지아는 삶의 전부였다.

“우리 딸은 정말로 소설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표현하는 수준이 여느 소설가보다 강하고, 멋지고, 슬프단다. 지아가 그런 생각이나 단어들을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는 궁금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 (지아의 소설을 읽은 엄마가 쓴 편지中)

지아는 학창시절 많은 방황을 겪었다. 친구들과 학교 인조 잔디에 불장난을 하다 혼나기도 하고, 왕따를 시키기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아이, 자신을 최고로 알아주는 엄마에게서 행복을 느끼는 아이였다.

“나는 일찍이 안 좋은 사건과 경험을 통해서 내 잘못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그게 오히려 빨리 찾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할 때 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투정과 어리관만 부리지만 막상 열심히 할 것이기에 나는 나를 믿는다.” (사월의 편지 ‘자서전’ 중 한 대목)

책에는 지아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단원고 친구들의 편지도 실렸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이틀 전 지아는 친구들과 편지를 나눌 정도로 정이 많은 아이였다. 지아와 친했던 친구 여섯 명 중 다섯 명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됐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친구 혜린양은 “밝고 재미있는 친구”,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는 친구”로 지아를 기억한다.

▲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학생들의 모습.이 아이들 중에서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다윤, 허유림, 담임 선생님인 전수영씨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 416가족협의회

엄마 지영희씨는 지아가 생전에 쓴 소설도 함께 엮었다. <태능선수촌 2012>, <에피 시리즈>, <섬돌이와 섬순이> 등 지아가 습작으로 쓴 작품들이 소개됐다. 축구선수 기성용을 좋아해서 축구소설도 썼다.

엄마는 먼저 간 딸에게 못한 것만 생각나서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지아의 엄마로 살아간 것에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음 세상에서도 엄마 딸로 태어나줘. 엄마가 다 못한 지아의 사랑 꼭 보답할게.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고, 정말 사랑해. 지아야 엄마가 또 편지 쓸께.” (사월의 편지, ‘2014년 7월 20일 지영희 엄마가 정지아 딸에게’의 한 대목)

▲ 세월호 침몰사고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2학년 고 정지아양의 글이 담긴 책 <사월의 편지> ©go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