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매월 내야하는 건강보험료(건보료). 가혹한 세금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역가입자들 대부분이 그런 형편이다. 1인 이상 고용하는 사업자를 직장가입자로 전환토록 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현재 영세 서민들만 지역가입자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종업원이 없는 영세사업장, 단순노무자, 실업자, 자영 농어민, 특수 고용직, 독거노인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다달이 내는 서민 월세도 재산? 벼룩의 간 빼먹기

직장가입자들에게는 임금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가 부과되지만,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을 기준으로 건보료가 책정된다. 재산이 없는 영세 서민인데도 재산 기준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다. 대체 어떤 식으로 영세 서민에게서 ‘재산’을 찾아내는 걸까.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의 경우를 보자. 매월 낸 건보료는 50140원. 이 중 12350원은 ‘재산’을 반영해 매겨진 부분이다. 월세 보증금과 월세액을 전세로 환산해 산출된 수치만큼을 재산으로 봤다. 여기에 ‘성별-연령 소득평가 기준’을 세 모녀에게 적용해서 나온 37790원이 더해져 건보료가 책정된 것이다.

서민이 다달이 내는 월세까지 재산으로 간주하다니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다. 사회보장보험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경우는 없다. 서민에게는 돌멩이를 떡이라고 우기는 식으로 월세까지 재산으로 둔갑시키면서도 부자들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송파 세모녀 건보료 5만원, 이명박은 2만원

부자들의 건보료가 영세 서민보다 훨씬 적은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가입자가 되면 임금소득에만 건보료가 부과된다 점을 악용하는 재산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임금소득 이외의 양도, 상속, 증여 소득 등은 건보료 부과에서 배제돼 있다. 이런 연유로 월 수백만원 건보료를 피하려는 부자들은 직장가입자가 되기 위해 위장창업과 위장취업 등의 편법을 동원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건보료는 송파 세 모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달랑 2만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가능했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에 건물 3채 등 거액의 재산을 보유했던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건물 안에 대명기업이라는 임대차관리업체를 차렸다. 자신이 대표를 맡으면서 직장가입자로 전환된 덕분에 건보료가 2만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부자들에겐 높은 건보료를 피할 수 있는 길이 널려있다. 위장취업, 위장창업 등의 방법으로 직장가입자가 최저 수준의 건보료를 내는 방법도 있지만, 혹여 그럴 수 없는 부자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경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건보료가 갖고 있는 역진성(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부담을 지는 것) 덕분이다.

▲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재산 300배 증가해도 건보료는 증가는 불과 22배

건보료의 역진성은 매우 심각하다. 건보료 책정 기준만 봐도 정부가 얼마나 부자들을 알뜰살뜰 챙기고 돌봐주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역가입자 재산구간별 건보료 기준표를 분석해 보면 어처구니없어 말문이 막힐 정도다.

재산 1천만원에 대한 월 보험료는 11580원. 재산이 10배 늘어 1억원이 되면 건보료는 77080원으로 6.6배 늘어나고, 재산이 100배 불어나 10억원이 될 경우 177770원으로 15배 증가한다. 최고 구간인 재산 30억 이상이면 월 보험료는 250910원. 재산 1천만원인 경우에 비해 22배 늘어날 뿐이다. 재산이 300배 증가해도 건보료는 불과 22배밖에 늘지 않는다. 재산이 적은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많게,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적게 부과되는 게 지역 건보료다.

반면 지역가입자인 서민들의 경우 옴짝도 못한 채 이중의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 수년 전 사업실패로 직장을 그만두고 힘겹게 살아가는 A의 경우다. 5만8천원씩 내오던 건보료가 지난해 말 17만5천원으로 340% 올랐다. 건강보험공단에 그 이유를 물으니 부부가 모두 실직상태였다가 부인이 촉탁직으로 근무하며 발생한 2100만원 소득(2013년/월 175만원) 때문이라는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건보료 폭탄 맞은 서민 A씨

A씨는 억울할 뿐이다. 월수입 175만원의 10%인 17만5천원을 건보료로 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가계자산 변동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쏙 빼내 집계한 건강보험공단의 ‘아전인수식 셈법’이 만들어낸 황당한 결과다.

A씨의 가계자산 변동을 보면 2013~2014년 1년 동안 부채(전세대출 등)가 2500만원 증가해 사실상 가계소득은 400만원 줄었다. 부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연수입 전액을 ‘소득증가’로 해석하고, 월세와 월세보증금을 전세로 환산해 ‘재산’으로 본 뒤, 여기에 연령-성별 평가기준을 소득처럼 반영함으로써 A씨의 건보료가 세배 반이나 오르게 된 것이다.

뜯어낼 건 다 뜯어내고 그래도 없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또 뜯어낸다. A씨의 경우가 그렇다. 이렇게 악랄하게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서 일까. 최근 몇 년 동안 건강보험의 당기수지와 누적수지가 크게 늘었다.

▲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서민 털어 곳간 채운 건강보험공단

적자였던 당기수지가 2012년부터 흑자로 돌아서며 그 폭이 2012년 3조원, 2013년 3조6천억원, 2014년 4조5천억원으로 늘었다. 누적수지는 사상 최대인 13조원에 달한다. 흑자의 원인은 두 가지다. 국민의 의료이용량이 줄어들어 건강보험공단의 지출이 감소한 반면, 보장성 확대 없이 건보료가 지속적으로 인상돼 이것이 수입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계소비 지출 중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5%까지 높아져 가계 파탄 원인의 2/3가 의료비 지출 때문이라는 미국(6.7%)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영세 서민들의 고통이 크다. 병원 갈 돈이 없어 아픈데도 참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의료비 부담도 큰 문제지만 서민가계에게는 우선 건보료가 문제다. 건보료가 주는 부담이 가계를 압박하는 수준인데다 상대적 박탈감 또한 크기 때문이다. 월 소득의 10% 이상을 건보료로 내는 서민들이 많은데도 수백억 재산가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건보료를 피해간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바로가기)